조선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후 전국을 ‘X’ 형태로 6개의 도로를 구축했어요.
한양에서 부산의 동래성까지는 380km, 경상도에서 한양을 가기 위해서는
충청도를 잇는 세 갈래 길을 넘어야 했어요. 영주에서 죽령을 넘으면
단양, 김천에서 추풍령을 넘으면 황간, 그 사이로 문경에서 새재를 넘으면
충주가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새재는 높고도 험한 재라는 뜻이에요.
그만큼 험한 고갯길이랍니다. 오죽 높으면 새조차 넘기 힘들다 해서
새재라고 했을까요? 문경새재는 태종 때인 1413년에 개통했어요.
경상도 선비들은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했는데,
죽령이나 추풍령보다는 시간을 하루 이틀 단축할 수 있는
조령을 주로 넘었어요. 그런데 조령은 고개와는 달리 높고 험해요.
그런데도 조령을 넘은 이유는 뭘까요?
네, 죽령을 넘으면 말 그대로 주욱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조령을 주로 넘었던 거죠.
또 조령은 선비들 뿐만 아니라 보부상 등 많은 사람들이 넘어다녔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은 고니시 유니카가,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등이
세 갈래의 길로 저마다 일본군을 이끌고 한양으로 항했어요. 이들이
죽령, 조령, 추풍령을 넘을 때 조선군이 한 명도 안 보이자
춤을 추며 넘었다고 해요.
(...이하 생략)